
사진 Centre for Ageing Better · Unsplash
핵심 요약
- "누가 내 돈이나 물건을 훔쳐갔다"고 의심하는 도둑망상은 치매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망상 증상이에요.
- 고집이나 거짓말로만 볼 일은 아니에요. 인지기능 저하와 여러 심리·환경적 요인이 함께 영향을 줄 수 있어요.
- 부정·논쟁·설득은 대부분 역효과예요. 감정을 먼저 받아주고 함께 찾는 쪽이 나아요.
- 증상이 심하거나 안전이 걱정되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세요. 환경 조정이나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어요.
치매를 돌보는 가족이 가장 당황하고 상처받는 순간 중 하나가, 어르신이 "누가 내 돈 가져갔어", "네가 훔쳐갔지"라고 하실 때예요.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사람이 도둑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서럽죠.
먼저 마음에 새겨두면 좋은 게 있어요. 이건 어르신이 변한 것도, 우리를 미워해서도 아니에요. 치매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일 뿐이에요. 오늘은 이 '도둑망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면 좋은지, 저희 이야기와 함께 정리해 볼게요.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엄마는 원래 휴대폰을 잘 쓰셨어요. 전화·카톡은 물론 문자도 직접 쓰시고 사진도 척척 보내셨죠. 그런데 치매 진단을 받을 무렵부터 휴대폰 사용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메시지를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걸어도 잘 안 받으시거나 받자마자 끊기고, 다시 걸면 "잘못 눌렀다"라고 하셨어요.
진단 이후엔 모바일뱅킹 같은 은행 일을 어느 순간 못 하시게 됐어요. 그래서 아빠가 대신 결제나 이체를 해주셨는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저에게 "네 아빠가 내 통장에서 몰래 돈을 빼서 쓴다"고 하시는 거예요. 아빠께 여쭤보면 아니라고 하시는데, 엄마는 "내가 은행 일을 못 하니까 그걸 이용해서 아빠 통장으로 돈을 옮긴다"고, 그 말씀을 하시는 횟수가 점점 늘었어요.
하도 확고하게 말씀하셔서, 저는 "그럼 내가 확인해 줄게" 하고 실제로 뱅킹 앱 사용 내역을 직접 살펴봤어요. 그런데 그런 흔적은 전혀 없었어요. 엄마께 화면을 보여드리며 "이체된 것 없고,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어요"라고 설명드렸죠. 그 순간엔 받아들이시는데, 이후에도 몇 번이나 똑같이 그러셨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이게 바로 도둑망상이고, 돌봄 가족이 실제로 많이 겪는 일이라는 걸요. 처음에 엄마 말씀을 강하게 부정하며 설명하려 했던 제가, 또 많이 몰랐구나 싶었어요.
왜 "누가 훔쳐갔다"고 하실까

사진 Ariel Salgado · Unsplash
알아보면 이유가 있어요. 이건 피해망상 중에서도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형태예요.
- 물건이나 돈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기 어려워지면서, 갑자기 안 보이니 당황하세요.
- 그 공백을 "누가 가져갔다"는 해석으로 채우게 되는 거예요.
- 그래서 본인에겐 정말로 도둑맞은 것처럼 느껴져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믿고 계신 거예요.
이걸 알고 나면, "왜 나를 의심하지?"라는 서운함이 조금은 "많이 불안하시구나"로 바뀌더라고요.
이렇게는 하지 마세요
가장 먼저 알아둘 건,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대응이 대부분 역효과라는 점이에요.
- "안 가져갔어요! 그런 적 없어요!" 하고 강하게 부정하기 — 어르신에겐 오히려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껴져 더 완강해지세요.
- 논리로 설득하거나 증거를 대며 논쟁하기 — 망상은 설득으로 풀리지 않아요. 다툼만 커져요.
- "왜 자꾸 그러세요" 하고 비난·훈계하기 — 불안을 키우고 관계만 상해요.
억울해서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기려 하지 않는 것이 사실 가장 빠른 길이에요.
이렇게 해보세요
정답이 하나는 아니지만, 공식 돌봄 안내와 여러 가족의 경험에서 공통적으로 권하는 방법이에요.
- 감정을 먼저 받아주기 — "그게 없어져서 많이 놀라셨겠어요"처럼 불안한 마음에 먼저 공감해요.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요.
- 함께 찾기 — "같이 찾아봐요" 하고 같은 편이 되어 움직이면, 그 자체로 안심하세요.
- 물건 자리를 단순하게 — 자주 찾는 물건(지갑·통장 등)은 정해진 한 자리에 두고, 가능하면 그 자리를 바꾸지 않고 유지해 혼란을 줄여보세요. (집을 단순하게 바꾸는 방법은 이 글에 정리해 뒀어요.)
- 화제를 부드럽게 돌리기 — 찾고 안심하신 뒤엔 좋아하시는 이야기나 간식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옮기면 격해지지 않아요.
돌보는 내가 도둑으로 몰릴 때
이 부분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일 헌신하는 사람이 도둑으로 지목되면, 머리로는 병인 걸 알아도 마음은 무너져요. 그건 당연한 감정이에요.
그럴 때 "내가 뭘 잘못했나"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족 중에서도 특히 가까이에서 돌보는 사람이 지목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곧바로 '나를 미워해서'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치매로 인한 망상 증상일 수 있으니까요. 혼자 삭이기 힘들 땐 치매안심센터의 가족 자조모임처럼 같은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도움이 돼요.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나만 겪는 게 아니구나" 하고 숨이 좀 트이거든요.
이럴 땐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혼자 감당하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나은 때가 있어요.
- 의심·망상이 점점 심해지거나 자주 나타날 때
- 그로 인해 불안·초조·공격성이 커지거나, 어르신·가족의 안전이 걱정될 때
- 가족 갈등이 깊어질 때
이런 증상은 치매의 행동심리증상(BPSD)의 하나일 수 있어요. 원인과 정도에 따라 환경을 조정하거나,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으니, 심하거나 반복된다면 혼자 감당하지 말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치매안심센터,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에 상의해 보세요. (다른 문제행동 대응은 이 글에 담았어요.)
자주 묻는 질문
Q. 결백을 밝히면 오해가 풀리지 않을까요? 안타깝지만 망상은 설득이나 증거로 잘 풀리지 않아요. 해명보다 감정을 받아주고 함께 찾는 쪽이 상황을 더 빨리 가라앉혀요.
Q. 계속 받아주기만 하면 증상이 심해지지 않나요? '받아준다'는 건 거짓말에 동조하라는 게 아니라, 불안을 인정하고 안심시켜 드린다는 뜻이에요. 그래도 증상이 잦아지면 의료진과 상의하는 게 좋아요.
Q. 약을 꼭 먹어야 하나요? 증상 정도에 따라 달라요. 환경 조정만으로 나아지기도 하고, 필요하면 약물이 도움이 되기도 해요. 판단은 전문의의 몫이니 진료로 확인하세요.
모든 걸 증상으로만 보지 않으려 해요
돌보면서 느낀 건, 치매는 누구나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주위 사례나 매체에서 접하는 이야기도 매번 새로워요. 그래서 저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에요.
다만 한 가지 조심하는 게 있어요. 엄마의 모든 행동을 '치매 증상'으로 엮어서 받아들이면, 돌보는 저부터 너무 예민하고 무겁게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한 사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쉽지는 않지만, 이 균형을 찾는 것도 돌봄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도둑망상 앞에서 억울하고 지치는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 말을 어르신의 진심이나 가족에 대한 미움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치매로 인한 망상 증상일 수 있으니까요. 이길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어요. 불안한 마음을 함께 다독여 주는 것 — 그거면 충분할 때가 많아요. 혼자 힘들 땐 치매상담콜센터(1899-9988)나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꼭 받으세요.
이 글은 저희 가족의 돌봄 경험과 공개된 공공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심하거나 걱정되면 의료진과 상담하세요.
참고한 자료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 치매환자의 가족을 위한 정보(의심·도둑망상 대처)
- 보건복지부 / 국립정신건강센터 — 치매의 행동심리증상(BPSD)
- 중앙치매센터 / 치매상담콜센터 1899-9988 — 의심·망상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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